produced by
Keith Thomas, Brown Bannister, Michael Ormatian
간단한 퀴즈. 크리스천 음악 역사상 가장 큰 힛트를 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에미 그랜트의 [Heart in Motion]은 도브상을 모두 몇개나 수상했을까요?
정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네 사실이에요. 그 당시 [Heart in Motion]을 잠재적으로나마 크리스천 음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돌았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기억은 정확히 안나지만 아마 수상 후보에도 거의 오르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랜트는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죠. 이 수상이 92년이니 [Heart in Motion]을 통한 수상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결국 음반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되, 아티스트로서 에미 그랜트의 활약은 인정한 것이지요.
과연 [Heart in Motion]에 대한 이런 푸대접이 가당한 것이었을까요? 지금 기준으로는 절대로 아닙니다. 망말로 최근에 나오는 모던락 계열의 음반들 중 [Heart in Motion] 정도의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반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하지만 시대상황을 고려한 관점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그랜트 자신도 크리스천 음악계에서는 제일 앞서가는 중진 중 하나였으니까요. 게다가 몇몇 지역 크리스천 음반점에서는 [Heart in Motion]을 가판대에서 제외시키기도 할 정도로 팬들의 분위기도 뒤숭숭 했습니다. GMA 사람들은 [Heart in Motion]을 수상권에서 제외시킴으로서 크리스천 음악의 본위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우회적인 선언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Heart in Motion]이 어땠길래? "Good for Me", "Baby Baby", "That's What Love is for", "Every Heartbeat", "Galireo" 등 많은 곡들이 '얼핏 보기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곡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세히 보자면 그런 곡들은 거의 없어요. "Good for Me"는 친구와의 우정을 노래한 곡이고, "Baby Baby"는 그랜트의 딸인 밀리를 위한 곡입니다. (이게 한때 논란이 되었었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죠. 다른데도 아니고 바로 CD의 부클릿 안에 쓰여진 내용이었으니까요.) "That's What Love is For"는 사랑의 본질을 노래한 곡이고요... "Every Heartbeat"나 "Galireo" 정도가 정말로 남녀간의 연애감정에 대한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런 수준의 수위를 왜곡한 것은 순전히 뮤직 비디오들 덕분입니다. [Heart in Motion]의 일반 배급을 맡았던 A&M 이 제작한 뮤직 비디오들은 완전히 노래와 상관없는 분위기였거든요. "Baby Baby"에서는 잘생긴 라틴 남자 모델이 등장해서 그랜트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Every Heartbeat"도 설정상에서 뭔가 일어날듯한 야한 분위기가 담겼으니까요. 심지어 A&M은 노래의 컨셉에 맞게 제작되었던 "Good for Me"의 오리지널 뮤직 비디오 대신 남자 모델을 동원해서 "Baby Baby"의 짝퉁같은 -역시 묘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이 뮤직비디오들은 지금 봐도 좀 그렇습니다. 어쨌든 유명한 음반의 뮤직 비디오라서 소개하는 취지로 보여줄 순 있어도, 이 뮤직 비디오들만 떼어서 명작이라고는 절대로 말 못하겠어요.
앨범 이야기를 해야죠. [Heart in Motion]에서 찬양의 메시지를 담은 곡은 마지막 곡인 "Hope Set High"입니다.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질적인 이 곡은 마치 마이클 W 스미스가 자신의 음반에 워십 스타일의 곡을 꼭 하나씩 수록해 온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같다고는 할 수 없어요. 스미스의 음반에서 '워십 스타일'이란 전적으로 음악 스타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메시지의 측면에 있어서는 더 많은 곡들이 여기에 해당 되었죠. 하지만 그랜트의 "Hope Set High"는 말 그대로 크리스천의 메시지를 담은 유일한 곡입니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의 구분이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쉽게 폄하하진 못합니다. 말그대로 '에미 그랜트답게' 시도한 메시지의 곡들도 있었거든요.
대표적인 곡이 바로 "Ask Me"입니다. 심지어 곡의 리듬과 분위기도 긴장감이 어린 이 곡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만든 곡입니다. 부클릿의 가사의 말미에는 피해자들을 위한 클리닉 번호까지 써놓았죠. 이러 사회적인 메시지의 시도는 [Heart in Motion]이 갖고 있는 큰 가치-아울러 상대적으로 가려져있는 가치-중 하나입니다.
사랑에 대한 메타포도 (당연하겠지만) 말초적인 접근과는 거리가 멉니다. 엄숙한 분위기의 "That's What Love is for"같은 곡만큼이나 "Every Heartbeat"도 떨리는 감정에 대한 재밌는 접근을 갖고 있는 노래입니다. (작곡자인 찰리 피콕은 이 곡의 유명세 덕분에 자신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게 되었죠) "Hats"는 약동하는 세상의 이야기에 대한 풍자적인 은유를 잘 담고 있고요.
힛트 싱글인 "Good for Me"나 "Baby Baby"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가족과 친구에 대한 교감의 테마는 에미 그랜트 자신이 70년대부터 추구해온 메시지였습니다. 크로스오버에 불을 당긴 전작 [Lead Me On]에서도 두드러졌고요. 오히려 이런 곡들이 더 에미 그랜트 다운 노래들인 셈이에요. 문제라면 그놈의 뮤직 비디.... 그만하죠.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를 재차 강조할 필요는 없겠죠. 전작인 [Lead Me on]이 그랜트의 음악에 락적인 요소의 터잡이를 했다면 [Heart in Motion]은 이런 터위에 만개한 꽃과도 같은 앨범이었습니다. "Good for Me"나, "Every Heartbeat"에 담겨있는 락적인 요소들은 이를 잘 증명해주죠. 그랜트가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여성 락보컬 부문 후보로 올라간 것도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I will Remember You"의 연주 저편에 깔리는 일렉의 분위기도 락발라드의 느낌을 강조해 주고요.
많은 사람들은 이 앨범에서 "I will Remember You"나 "That's What Love is for" 같은 발라드를 더 좋아합니다. 힛트싱글과는 별도로 체감되는 느낌으로 좋은 음악인 셈이죠. 힛트 싱글과 호감 싱글(?)이 이렇게 뭉쳤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죠. 그랜트의 허스키한 보컬도 여기에 잘 묻어나고요.
결론을 짓자면... 그것이 2006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결론이라면 [Heart in Motion]은 분명 명반입니다. 심지어 이 앨범이 받았던 다소의 비난까지도 크리스천 음악계에 시사하는 바가 컸고, 그것 역시 공로로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크로스오버의 조심스런 외줄타기였던, 혜안을 갖추고 자유로이 일반 시장과 크리스천 음악 시장을 넘나드는 도약이었던, 이 음반이 후대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하긴 제가 강변할 필요도 없겠죠. 현재 대부분의 미국 크리스천 음악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2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