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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화이트하트 Whiteheart [Emergency Broadcast] (198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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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ed by Whiteheart

(1987/Sparrow)





1995년 앨범 [Inside]를 발표하기 전 마크 거스멜과 빌리 스마일리는 그들의 팬 소식지 'Morning Star'에서 재미있는 발언을 했는데, 자신들의 팀 이름 화이트하트의 두 단어가 원래는 붙은 단어였다는 거였어요. 다시 말해 "White Heart"가 아니라 "Whiteheart"라는 거죠.


그런데, 97년 [Redemption] 에서는 다시 "White Heart" 가 되어버렸어 요. 'W'와 'H'를 강조해서 요즘 유행을 따라서, 팀이름 자체를 'WH'라고 이니셜화 시킨 것을 앨범 커버에까지 표시했구요.


뭐 중요한건 아닙니다.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것은 87년 앨범 [Emergency Broadcast] 에 쓰여진 'WHITE HEART' 철자중에 'W'와 'H'가 유독 크게 쓰여진 것이 눈에 띄여서 그런가 봅니다. 이전 앨범인 [Don't Wait for the Movie] 나 다음 앨범인 [Freedom] 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80년대 중반부터 WH의 앨범들은 그 높은 완성도로 앨범간의 경쟁을 해도 될 만큼의 수작들이었죠. 전후로 발표된 [Don't Wait for the Movie] 와 [Freedom]이 너무나 좋은 평을 들었기에 상대적으로 약간 가리어진 느낌이 있는 [Emergency Broadcast] 도 마찬가지의 위상입니다. 이 앨범도 그냥 묻혀지기엔 너무 멋진 앨범이에요.


멋진 것은 단순히 앨범의 음악들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때 WH의 세션 라인업은 그 어느때보다도 골든 멤버들이었습니다. 물론 WH의 바이오그래피 중 골든 멤버들이 함께하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었지만요. 그중에서도 87년의 라인업은 정말 발군입니다.


일단 86년에 가세한 고든 케네디와 릭 플로리안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 뉴비들의 가세에 절정을 이룬 것이 게리 런이 나가면서 참여한 베이시스트 타미 심스입니다. 거기에 오랜 멤버인 크리스 맥휴와 스마일리, 거스멜로 대표되는 6인방은 단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에서만 함께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라인업이었죠.



[Emergency Broadcast]는 [Don't Wait for the Movie]에서 체감된 느낌을 조금씩 증폭한 앨범 그대로입니다. 더 락적인 무드가 세졌고, 연주면의 기량을 더 강조했고, 발라드 부분에서는 더더욱 세련미를 더하게 한 앨범입니다. 그리고 물론.... 노래들도 멋집니다.


이 시기 즈음에 WH의 메인 보컬을 맡았던 사람은 세 명입니다. 리드싱어인 릭 플로리안과 고든 케네디, 그리고 마크 거스멜이요. 물론 이 앨범중에 케네디와 거스멜이 리드를 맡았던 노래들은 플로리안에 비해 많지는 않았지만, 무난하면서도 멋진 보컬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케네디의 보컬, 가늘어 보이면서도 파워풀한 이미지로 대변되는 플로리안의 보컬, 그리고 허스키한 거스멜의 보컬은 각각 앨범의 구심점을 이룹니다.


일례로 이 앨범의 발라드 싱글중 인기 있었던 "Montana Sky" 같은 노래는 완전히 "Fly Eagle Fly"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케네디의 보컬에 초점을 맞춘 노래입니다. 무난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시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발라드 싱글 말이에요.


플로리안의 보컬은 케네디와 다르게 '호소력'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역시 발라드 싱글로 예를 들자면 "Somewhere in Between" 같은 노래를 들 수 있겠네요. 여기서 플로리안은 케네디와는 다르게 자신만의 호소력과 기교를 부리는 보컬을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마크 거스멜도 빼놓을 수 없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앨범에서 거스멜이 메인 보컬로 등장하는 노래 "Edge of the Dream"은 그다지 화제를 모으지 못했죠. 아무래도 케네디의 "Montana Sky"에 대한 후광의 요인이 클겁니다.


하지만,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Edge of the Dream"은 92년 곡인 "Gabriela"와 함께 WH의 노래들 중에서 대표적인 크리스천 러브송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뒤늦은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노래를 메인으로 부른 거스멜이 무려 8년이 지난 뒤에 멤버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웨딩 마치를 올렸다는 건 좀 아이러니하죠? (뭐. 95년의 혼인이 재혼이었다던지, 87년 당시에 애인이라도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Emergency Broadcast]의 락 싱글들도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면을 갖고 있는데, 슬로우 비트와 그다지 현란하지 않은 연주로도 독특한 강렬함을 보이는 "No Taboo", "Urban Renewal" 같은 곡들과 이에 비해 빠른 비트와 정신 없는 연주의 기교를 보이는 "Fashion Fades", "More Sold Out" 같은 곡들이 서로 상반된 배치가 되면서 앨범의 푸짐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No Taboo" 같은 노래는 참 독특해요. '종교적인 금기'를 의미하는 'Taboo'라는 묘한 어감을 주는 단어가 이국적으로 들리는 듯한 비트와 어우러지고, 여기에 플로리안, 케네디, 거스멜 그리고 베이스의 타미심스까지 함께 메인 보컬로 등장하면서 더더욱 그 독특한 분위기에 일조하는 노래입니다. 파워풀한 락싱글은 아니지만 분명히 기억해둘만한 노래임엔 분명해요.


세태에 대한 풍자, 경배와 찬양, 감성적인 신앙 고백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재치있는 가사는 이 앨범에서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앨범 제목의 모티브가 된 "Speed of Sound"나 미국 수퍼 히어로물을 제목으로한 "Lone Ranger" 등에서는 비유적인 면면의 뛰어남도 엿볼 수 있고요.


앨범이 10곡으로 딱 끝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후 앨범들의 후광때문에? 뭐가 뭐든, 구성면에서 다소 소박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앨범이긴 하지만 수록곡들 만큼은 정말 진국인 앨범입니다.


(199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