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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쉬르 [The Miracle] (201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9.


쉬르
[The Miracle]

produced by 김문

(2011/Shir)





쉬르의 첫 앨범 [Miracle]을 진두지휘한 프로듀서 김문의 전공은 클래식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보컬 멤버들은 그의 교회인 제일 영광 교회에서 오래동안 함께한 지체들이고요. 그렇다면 대충 어떤 분위기의 음반이 나올지 짐작이 갑니다. 여럿의 보컬이 참여했으니 이들이 모두 클래시컬한 느낌의 음반은 아닐터이고, 무난한 팝스타일의 워십 앨범 정도겠죠. 같은 교회의 일원들이니 그 음악적 반경도 그다지 넓지 않을거 같고, 앙상블은 좋을듯 해도 세련됨은 부족할 겁니다. 오디션등을 통해서 모여진 인원이 아니니까요.


아닙니다. 쉬르의 [Miracle]은 컨티넨탈 싱어즈나 어노인팅보다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나 얼터 같은 스타일의 음악에 더 가까운 음악들로 채워졌습니다. 게다가 여러 보컬들이 참여한 덕에 유사한 느낌으로 들만한 팀들이 더 늘어납니다. 모던한 사운드의 망라인 셈인데, 노래들 중 서투르게 흘러가는 곡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보컬들은 얄미울 정도로 곡들의 느낌에 잘 부합하고요.


수려한 완성도 덕분에 음반을 만들어간 과정이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한 교회의 오래된 멤버들이라면 호흡을 맞추는데는 유리할 수 있겠지만, 다루는 장르가 평이하지 않다면 준수한 완성도를 일궈내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Miracle]은 분명 이를 넉살좋게 극복한 결과물입니다.


결국 프로듀서인 김문의 진두지휘가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문은 모던락이나 어쿠스틱 사운드에서 기교가 앞서는 스턴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래 자체로 특출난 시도를 하는대신, 노래를 부를 보컬들이 가장 안착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연주와 편곡을 깔았습니다. 다양한 보컬들이 등장하지만 고음을 지르던, 적당한 키에서 오가던 어느 경우이든 보컬들이 유독 편해 보이는 것도 그런 프로덕션의 결과입니다.


장르에 대한 애착, 기본기에 충실한 프로듀싱과 그에 호응하는 보컬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환상적입니다. "주께 더 가까이"같은 곡의 전반부는 둔중한 디스토션으로 시작되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당당함과 뻔뻔함이 약간 부족한 탓인지 (부르는 이나 듣는이 모두에게) 약간은 어색해 뵈기도 합니다. 그러나 곡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보컬과 곡의 완성도가 합일화가 되어가죠. [Miracle] 앨범이 갖고 있는 전체의 느낌이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Blessing", "With You"같은 곡들이 갖고 있는 어쿠스틱의 하늘하늘한 느낌과 "Miracle", "지금은 엘리야때처럼"같은 곡들이 갖고 있는 일렉의 장중함은 앨범안에서 반복되면서 쉬르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요. 디지털 싱글이 조명받는 요즘이라 발표직후 "Blessing"에게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가 부당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개별적인 곡들의 노래가 잘 만들어진 것도 큰 요인이지만 "지금은 엘리야때처럼"같은 곡에서의 편곡은 작곡외의 요인들도 크게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익숙한 노래에서 코드상의 변주를 준다던지 중후반부의 새로운 첨가는 이미 한국 교회내에서 수차례 불려진 이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가사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넓지만 그 표현은 직관적입니다. 다른 어쿠스틱 장르의 선배들이 주로 담고 있는 중의성은 찾기 힘든 가사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노래를 담당한 보컬들의 연배, 그리고 이를 접할 이들의 공감대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적절한 선택인듯 합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더 많은 음악을 만들어내다면, 가사 역시 좀 더 넓은 반경을 찾아도 될 듯해요.


쉬르의 첫 앨범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잘못된 프로덕션이나 좋은 음악을 만듬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의 결실이 아닌, 이제 막 필드에 적응하려는 멤버들이 갖추지 못한 약간의 어색한 느낌들이 대부분입니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정도라면 뭔가 더 빵빵 터뜨릴 수 있겠다라는 그런 종류의 아쉬움이죠.


반가운 것은 이런 경우, 현재의 스타일을 잘 가늠만 한다면 그 결실이 다음 앨범에서 잘 채워진다는 것이죠. 게다가 같은 교회의 지체들로서 서로의 모니터링과 훈련의 요철을 잘 맞춰갈 수 있는 여지도 있으니 그 가능성은 한층 더할 겁니다. 오랜만에 대단한 음반을 만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