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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주리 2집 [천 번을 불러도] (201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5.


주리
[천 번을 불러도]

produced by 이권희

(2010/트리니티)





주리가 레인보우 브릿지를 나온 후 솔로 앨범을 냈을때, 가창력 좋은 컨템퍼러리 여성 싱어의 앨범을 반긴 이들도 많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장르 음악 잘하는 팀 하나가 스리슬쩍 사라졌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는 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저 역시 후자였습니다. 주리의 첫 앨범은 말끔히 잘 만들어진 앨범이었지만, 뛰어난 보컬이 그냥 말끔하기만 한 팝 스타일의 구성에 갇혀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주리의 두번째 음반인 [천 번을 불러도]에 대한 첫 인상은 사실 1집보다 더 깝깝합니다. 일단 앨범의 분위기부터가 고풍스런 느낌까지 들거든요. 대충 옛스런 느낌의 곡들을 편곡에 의지하는 구성일 것이란 예상이 들어서 진부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선곡에서도 리메이크 곡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1집보다 더 음악적인 운신이 좁아진 앨범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그러나 [천 번을 불러도]는 그런 예상 가운데서 과감히 정면돌파를 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예상대로 무난한 곡들이고, 예상대로 고풍스런 느낌이고, 예상대로 리메이크 곡들도 적지 않은 편이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표현을 굉장히 우직하고 힘있게 그려냅니다. 마치 국면전환을 이뤄내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인상을 받고 난 뒤의 [천 번을 불러도]는 완전히 다른 앨범이 됩니다. 심지어는 흑백으로 촬영된 자켓 사진 마저 진부함이라기 보다는, 애초부터 고풍스러움의 멋을 더 배가시키기 위한 선택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오프닝 트랙이 심형진의 "예수 닮기를"인 점은 다소 의외이지만, 오히려 다음 트랙인 타이틀 곡 "천 번을 불러도"로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찬송가 곡을 넘어 이권희가 계속 작곡을 담당한 "예수 내 안에" 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딱히 끊을 지점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은 주리가 직접 곡을 쓴 "주 보혈 찬양하리"인데, 그나마 앨범에서 비트가 있는 곡으로 만들어 졌음에도 곡이 앨범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점은 너무나도 적절합니다. 이런 앨범의 첫 인상 때문에 무게감을 굳이 나누자면 후반부가 조금 더 약하긴 합니다. 하지만 "예수 이름 높이세"의 리메이크 역시 의미 있는 시도였고요.


물론 이런 장르의 앨범이 갖는 대부분의 성과는 역시 보컬과 좋은 작곡가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천 번을 불러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주리의 보컬은 레인보우 브릿지 부터 지금까지 고유의 영역을 잘 만들어가고 그 반경에서 무리함을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그 반경이 무진장 넓기도 했지만요. 쟁반 위를 굴러가는 옥구슬이라는 뻔한 비유에 더해서, 표현의 반경이 넓다는 것을 그 쟁반의 지름이 크다는 것으로 가정했을때 적어도 쟁반 안에서 주리는 무진장 달려, 아니 굴러갑니다. 하지만 쟁반의 테두리가 높기에 그 반경을 튕겨 나가지는 않고요. 사실 무난한 앨범으로 만들어 졌을때 슬슬 쳐지는 프로듀싱의 느낌이 이 앨범에서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리의 보컬만큼은 앨범이 끝날때까지 질주와 절제를 잘 맞춰 오갑니다.


국내 크리스천 음악계에서 많지는 않은 시도를 해왔던 레인보우 브릿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주리가 좀 더 다른 장르 음악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복고적인 느낌 안에서 새로움을 꺼낸 것도 엄연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다음 음반이 어떤 스타일로 채워질지는 몰라도 [천 번을 불러도]에서 보여준 성과들은 분명한 고유의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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