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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재키 벨라스퀘즈 Jaci Velasquez [Christmas] (200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8.
사용자 삽입 이미지



produced by
Chris Harris

(2001/Word)



재키 벨라스퀘즈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듣다보면 에이미 그랜트의 92년 크리스마스 앨범 [Home for Christmas]가 떠오릅니다. 일단 크리스천 가수들의 성탄 앨범에서 잘 안불려지는 세큘러 캐럴들 중 두 앨범에 공통으로 들어간 곡이 몇곡 있고요. 크리스 이튼의 작품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흠, 써놓고 보니 그다지 공통점이 많은 것도 아니네요. 아마 앨범보다는 가수의 이미지때문에 더 비슷하다고 느꼈나봐요.


하기야 데뷔 5년차의 젊은 가수와 (당시에) 음악활동 15년차였던 베테랑의 앨범을 비교할 수는 없겠죠. 그랜트의 앨범은 세큘러 곡들을 담은 만큼이나 세큘러 아티스트들도 영입해서 만들어졌으니까요. 벨라스퀘즈의 앨범에 그런 기획의 야심까지는 없습니다.


앨범의 분위기도 이런 면을 다분히 대입한거 같아요. 그만큼 차분한 앨범이라는 의미지요. 두어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래들이 5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라운지송같은 재즈 분위기로 일관되고 있거든요. 때문에 복고적인 내음도 풀풀 나고요. 물론 세개의 신곡이 있긴하지만 이 곡들도 대중적인 분위기가 최대한 감쇄된 발라드 곡들 뿐이에요.


하지만 신곡들의 신선함에 의지를 많이 하긴 합니다. 크리스 이튼이 작곡해준 "The Angel Song" 같은 곡은 그 역할을 제일 크게 맡은 곡이지요. 두번째 트랙이긴 하지만, 첫 곡인 "O Come O Come Emmanuel"이 정식 트랙이라기 보다는 다음곡을 장식하는 -전주 (Prelude)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첫 트랙이 되면서 일종의 기선제압(?)을 해냅니다. 게다가 어딘지 불안한 듯한 분위기로 은은하게 시작되는 피아노 연주는 그랜트의 앨범에서 이튼이 써주었던 곡인 "Breath of Heaven"과 너무나 비슷하고요. 곡이 닮은 만큼 앨범의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도 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나머지 신곡들은 좀 약한 구석이 있습니다. 두번째인 "It Wouldn't be Christmas"같은 경우도 그냥 라운지 송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여타 기존 캐럴들에 묻히고요. "Season of Love"는 레이블 메이트이자, -겨우 2년동안이긴 했지만- 페트라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피트 오타와의 듀엣이라는 점이 포인트로 작용되지만, 듀엣 하모니의 절정감을 느낄 정도로 곡이 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튀지 않는만큼 전후곡들과 일체감을 잘 발하기도 합니다. 무난하게 전개되는 차분한 흐름이 오히려 캐럴 앨범에 더 어울리기도 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물론 그만큼 지루한 감도 있지만, 대부분의 캐럴 앨범들이 감수하는 부분이니까요. 또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발랄한 무드의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나 "Feliz Navidad" 같은 곡들이 벨라스퀘즈의 '귀염스런' 보컬을 살리면서 앨범의 리듬감을 줍니다. 특히 "Feliz Navidad" 는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어쿠스틱 연주로 더욱 이런 느낌을 강하게 하고요.



재밌는 점은 앨범의 기획과 세부적인 면에서 벨라스퀘즈의 혈통에 대한 주체감이 슬쩍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우선 [Navidad]란 타이틀로 만들어진 이 앨범의 스패니쉬 버젼이 그 첫번째 예죠. 이 앨범은 [Christmas]와 같은 시기에 출반되었습니다. 한 장의 앨범이 동시에 두장의 언어로 출반된 것은 분명 흔치 않은 경우죠. "Felix Navidad" 를 비롯한 몇몇곡은 번안 없이 옮겨졌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스페인어로 번안된 뒤 옮겨졌으니 거의 새 앨범을 한 장 취입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이건 분명 보편적인 프로젝트의 경우에 해당될만한 일이 아니에요. 최근들어 라틴계 가수로도 명망이 더 높아진 벨라스퀘즈 정도이기에 감행할만한 일이지요.


또 하나는 보너스 트랙인 "Christmas Don't be Late" 입니다. 티비시리즈인 "Alvin and the Chipmunks"의 캐릭터들 (혹시 보신 분들 있을걸요. 빨간모자에 'A'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다니는 리더인 앨빈과 두 마리의 꼬마 다람쥐들은 가끔 우리나라에서도 지나가다 종종 볼 수 있는 캐릭터들입니다) 과 부르는 아동용 트랙처럼 들려지지만, 그 내용은 앨빈이 계속 또 다른 다람쥐인 테오도어에게 벨라스퀘즈를 칭찬할 문장을 스페인어로 번역하게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헤프닝이죠. 유난을 떠는 다람쥐들의 모습이 재밌긴 하지만, '스페인어'로 칭찬을 하려고 애쓴다는 내용도 따지고보면 벨라스퀘즈의 앨범이기에 나올만한 내용 아니겠어요?



[Christmas]는 시즌 앨범 특유의 무난함과 평범함으로 채워진 앨범입니다. 가수의 역량이나 기획단계에서 이런 정형화를 한껏 벗어나려고 애쓰는 캐럴 앨범도 있긴 하지만, 벨라스퀘즈와 프로듀서인 크리스 해리스 (이 사람은 근 20년전에 부인안 잔 해리스와 듀엣 활동을 해었던 그 크리스 해리스입니다. 도대체 어인일로 이렇게 갑자기 등장한 거죠?)는 몇몇 시도를 제외하고는 캐럴 앨범의 정형성을 따르는 쪽을 택했습니다.


물론 축으로 삼은 것은 벨라스퀘즈의 보컬이죠. 하지만, 그녀도 대단한 테크닉이나 성량을 보이기 보다는 지극히 노래의 분위기에 자신을 맞춘 듯이 노래를 부릅니다. 결국 모든 측면에서 시즌 앨범의 정형성을 따른 셈입니다. 하지만 재키 벨라스퀘즈의 크리스마스 앨범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해요. 뭔가 유별난 것을 기대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에요. 그렇다면 벨라스퀘즈로서는 기대한만큼 최선의 작품을 만든 셈입니다.


(2001/12)


PS : "The Chipmunk Song"에서 앨빈이 테오도어에게 번역하라고 시킨 문장은 "재키, 당신의 얼굴은 햇살보다 화사해요" 였습니다. 트랙의 처음에서는 벨라스퀘즈가 너무 아름답다며 감탄하기도 하고요. 물론 앨범 안에서야 3자끼리의 이야기지만, 이 트랙이 벨라스퀘즈의 앨범에 수록되었다는걸 생각하면... 웬지 좀 닭살 돋지 않나요? 우리나라 여자가수 앨범에서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