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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한수지 [Lead Me On] (201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6. 21.



한수지
[Lead Me on]

produced by
이효석, 곽은기, 한수지

(2011/NMD, JR Media)



소위 말하는 '얼굴 없는 가수들'에게 거는 음악적인 기대는 보상 받을 확률이 꽤나 좋은 듯 싶습니다. 일단 이들은 정말 노래 하나로 나선 사람들입니다. 이런 얼굴 없는 가수들이 활동의 영역을 넓힌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어 더더욱 비주얼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요즘 때에 이들의 희소성은 오히려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가치도 그만큼 인정받고 있고요.

이들의 활동 무대 중 큰 분야는 OST입니다. 곡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경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OST라 함은 말 그대로 '극적인' 음악들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 마치 하나의 전문분야처럼 느껴지는 음악들입니다. 가끔은 극중의 내용과 혼재되어 개그가 되기도 하지만, 그거야 드라마나 영화 사정이고, 적어도 음악들은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해냅니다.

한수지도 그런 사람입니다. '시크릿 가든', '미안하다 사랑한다', '프라하의 연인',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같은 드라마의 OST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특히 '신불사'의 OST에서 불렀던 "God of Sun"이란 곡이 인상적이었다고 하고요. 아쉬운고로. 저는 그 드라마 제대로 본 적 없습니다. 희대의 유치찬란함 때문에 네티즌들이 조롱거리로 만든 짤방만 여러번 봤죠. 그나마 짤방 가운데서도 계속 반복되던 스코어 음악은 크리스 코넬이 불렀던 007 주제가의 표절곡 같아서 더더욱 별로였고요.


제가 아쉬워하는 이유는 당연히 한수지의 첫 앨범 [Lead Me on]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앨범에서 들려준 공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컬이라면 분명 OST에서도 극적인 음악을 들려주었을 것 같아서죠. (하기야 나중에라도 따로 찾아서 들으면 되겠군요. 뭐하러 좋은 노래를 송일국이나 한채영의 오글거리는 연기를 눈으로 보면서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Lead Me on] 자켓에 붙은 홍보 문구는 한수지를 '스캣의 여왕'이라고, 아울러 그 밑에는 '아시아의 엔야'라고 하고 있습니다. 역시 좀 손발이 오그라들긴 합니다. 뭔가 안맞는 조합아닙니까? 사실 '스캣'이나 '엔야'가 홍보 용도로 쓸만한 좋은 단서는 아니죠. 딱 잘라 설명하기도 힘든 스캣, 이미 옛 가수가 된 엔야를 한데 붙여 놓는다고 얼마나 구체적인 스타일이 연상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이 단서들이 오히려 홍보 목적보다는 진정으로 고심한 결과인거 같긴 합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이런 수식들이 붙게 된걸까요?


놀랍게도 한수지의 보컬은 두 지점을 능숙하게 오갑니다. 그냥 '엔야가 재즈를 하는 분위기'라고 말하려는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깊숙히 들어갑니다. [Lead Me on]에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동원된 아이리시 분위기도 있고, 자유분방한 재즈 분위기의 곡들도 있습니다. 사실 더 헤짚으면 단선적인 어쿠스틱 스타일의 곡도 있고요. 그렇다고 막연하게 무난한 백화점식 장르 나열을 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보편적인 느낌의 어덜트 컨템퍼러리 분위기는 이 앨범에서 찾기 힘듭니다. 각 곡이 거의 장르음악들이죠. 이 정도면 구성 자체가 사실 스턴트나 다름없습니다. 각 트랙들의 연주들도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결국 곡의 스타일들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구성해놓고 모든 책임은 보컬에게 떠맡긴거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고 한수지는 이 곡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룹니다. 재즈 분위기의 곡들에서는 그에 걸맞는 즉흥성과 흐릿함으로, 강렬한 곡에서는 뚜릿뚜릿한 선있는  보컬을 마구마구 발휘합니다. 그 중간지점도 잘 찾고 있고요. (왜 '엔야'가 언급되었는지 알듯한 순간도 있고요.) 각 세션들이 분업과 협업이 잘 이뤄지는 것처럼 한수지도 보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요. 이 앨범에는 생각보다 코러스가 함께한 곡이 거의 없습니다. 그다지 코러스가 전면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두 곡에, 구성상의 특징으로 가미된 마지막 트랙 "This is My Story" 뿐이죠. 여느 프로젝트라면 "Heaven"같은 곡에서는 대규모 콰이어들이 들어가야 정석일 것 같지만, 이 앨범에서는 한수지 혼자서 깔끔하게 모든 것을 마무리 합니다. 레이어드 보컬 같은건 쓰지도 않고요.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수지의 보컬은 애초에 그런 부대적인 치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보컬입니다. 반복되는 후렴 가운데에서도 기민하게 자신의 스타일이나 변주를 살릴 줄 알고, 과시적인 고음을 지르지도 않죠. 첫 트랙인 "Heaven"의 후렴부는 좋은 샘플입니다. 비교적 높은 음들에 빠른 리듬. 반복적인 멜로디들로 이뤄진 곡이지만 한수지의 보컬은 곡 자체를 앞서갑니다. 적절하게 기교를 넣기도 하고, 절정에서는 샤우팅보다도 훨씬 더 편안하게 들리는 가성으로 마무리를 해서 곡을 살리기도 합니다. 반면 "시련이 와도" 같은 곡에서는 정말 크게 지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적재적소의 느낌을 보컬이 알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보컬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보니 찬송가들 위주로 구성된 앨범의 찬송가 트랙 특유의 지리함이 없습니다. 다만 '추세'를 말하자면 최근에 찬송가 재즈 곡들이 좀 많이 나왔던지라 기시감이 다소 생기긴 하지만요. 그렇다해도 창작곡 비중이 많은 전반부의 힘이 자연스레 앨범의 후반부까지 잘 이어갑니다.


진취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한 가사들 역시 곡에 잘 어울립니다. 전체적인 비중에서는 아무래도 스크립트를 그대로 사용한 곡들이 더 많지만, "Heaven", "내게로 와서", "시련이 와도" 같은 곡들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닌 곡이 갖고 있는 고유의 무언가를 담은 가사를 갖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비유와 표현들도 풍성하고요. 이쯤되면 거의 완벽한 마름질입니다.



거의 등속도처럼 몰아치는 앨범입니다. 장르가 세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장르로만 따지면 중간이후는 굉장히 느려지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등속으로 달리는 것은 아티스트의 우직함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 우직함은 장중한 곡이든, 작은 느낌의 곡이든 한결같이, 그렇게 앨범 끝까지 달려 나갑니다.


대중음악에서의 경험이 많았던만큼 개인의 첫 앨범으로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텐데, 정통적인 크리스천 음반으로 한수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아마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앨범이 될겁니다.




PS : 자켓은...그냥 제 취향은 아닙니다. 올해 나온 음반들 중 음악적으로 맘에 들었던 음반들 자켓은 모두 아쉬운 구석이 있네요. (게다가 오타도.. T_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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