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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식스펜스 넌 더 리쳐 Sixpence none the Richer [The Fatherless and the Widow] (199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produced by John Petri

(1993/R.E.X)







-우선 고백하고 넘어가야 겠군요. 97년 셀프 타이틀 앨범이 회자되는 이때에 굳이 6년전 앨범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확실한 것은 제가 식스펜스의 네 장의 앨범들 중에서 이 앨범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음악적으로요. 이 앨범이 잘 안 알려졌고, 옛날 앨범이고, 남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죠. 아하! 그런 앨범을 갑자기 뒤늦게 소개하는 것에 대해선....역시 시대 분위기(?)를 탔기 때문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겠지요. :)


외국 CCM이 손이 닿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각 통신 동호회의 게시판에서도 데뷔 6년차인 이 그룹에 대해서 스노브 취향들이 들쑥들쑥 일어나는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만...그리고 저 또한 이런 고약한 취향을 아주 골고루 갖췄던 사람이고요. 하지만 그래도 전 이런 면을 좀 졸업했다고 자부하렵니다. 이를테면 철이 좀 든 셈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어쩝니까. 식스펜스의 음악은 데뷔당시부터 어느 정도의 본령이 있었기에 [The Fatherless and the Widow] 도 매우 훌륭한 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고요.


아마 골수팬들은 동감하겠지요. 이들에게 있어서 97년 앨범은 갑작스런 상승세를 보인 수작이 아닙니다. 다만 시기를 잘탄 마케팅의 득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 [The Fatherless and the Widow]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이후의 세장의 앨범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매트 슬로컴의 작곡과 편곡 능력은 지금 들어도 전혀 시간적인 갭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타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확실한 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초기 스타일은 요즘보다는 확실히 모던하고 락적인 부분을 많이 추구했지요.


이런 면에서 식스펜스의 팬들 중에는 이 앨범이나 [This Beautiful Mess] 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을 겁니다. [Sixpence None the Richer]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앨범 자체가 프로젝트 적인 면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상이한 분위기였기에 약간 이질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을테고요. 물론 최근의 분위기는 이 앨범이 더 회자되고 있지만, 그것 또한 "Kiss Me"라는 싱글에 크게 의존한 방식으로 회자되는 것이기에, 그것도 확신을 못하겠군요.



- 그렇다면 이 앨범에서는 "Trust" 입니다. 이 앨범에서 제일 큰 무게를 실고 있는 곡이고, 리프라이즈 버젼이 실려있는 곡의 리스트만 봐도 이는 쉽게 감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식스펜스의 곡들 중에서 최고로 꼽는 곡이기도 하고요. 초기 앨범때부터 시작되어온 우회적이고 은유적인 가사들에 비해 이 노래는 메시지도 분명하죠. 애초부터 메인 싱글로 표방되고 나온 곡이기에 시간이 지나도 그 색이 바래지 않는 곡입니다. 기타와 드럼이 주종으로 흐르는 원래 버젼에 비해, 첼로와 피아노로 구성된 리프라이즈 버젼은 그냥 'Reprise'라는 타이틀만 떡하니 걸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곡입니다.


리 빙햄(아시다시피 이때는 아직 미혼이었죠)의 보컬의 잇점을 탄 점도 있겠지만, 이 점은 비단 앨범에서 이 한 곡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고, 재단된 듯한 보컬의 합치가 식스펜스의 노래에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니까요.



- 연주적인 측면에서의 기교를 강조하는 곡인 첫 곡 "Field of Flowers" 도 기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이런 가사들이 식스펜스의 곡들에서 일상적이었다는 점을 따져보면 "Kiss Me"의 가사에 대한 호들갑들이 좀 뒤늦은 것이라는 생각도 할만 합니다.


한발짝 떨어져 보면 식스펜스의 노래들 중에서 "Kiss Me" 처럼 가사가 쉬운 노래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슬로컴의 가사들이 심미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시'처럼 쓰여졌다는 점이 섣부른 해석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죠.


'시'는 슬로컴의 가사가 갖고 있는 줄기중에 하나입니다. "Field of Flowers" 에서도 휘트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요, 팀명에 바탕이 된 C.S 루이스, 그리고 97년 앨범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통채로 가사로 쓴 것만 봐도 쉽게 감지할 수 있죠.


- 재밌게도 이들의 가사는 운율적인 요소를 맞추자면 일반적인 시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차라리 산문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에요. '관계'와 다른 타자의 시선으로 보이는 고백의 모습을 대변한 것이 대부분인데, 반복되는 verse 가 굉장히 적다는 점, 있다해도 아주 짧다는 점도 이런 느낌을 더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곡인 타이틀곡 "아버지 없는 고아 (유복자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군요) 와 미망인"도 참 독특하죠. 충분히 예상할 만하지만 이 곡도 두 모자의 절망에 대한 관찰과 후에 있을 구원에 대한 노래입니다.


- "Spotlight" 이후의 중간 리듬의 연속은 다소 지루합니다. 그러나 역시 발라드 곡인 "Trust" 에서 오히려 감상의 환기가 이루어지는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물론 이어져오던 낮은 음역의 멜로디들이 이 곡에서 다소 높아진 점도 이런 느낌을 더하게 한 것이지만, 이 곡은 재삼 강조해도 질리지가 않는군요. 정말 아름다운 곡입니다.


- 리드미컬한 빠른 연주로 시작되는 "Falling Leaves" 도 이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입니다. 빙햄의 보컬도 그에 맞게 한껏 여유로움을 갖고 있고요. 그러나 주목할만한 곡의 느낌과는 다르게 이 곡도 그 자체로는 기독성이나 퓨리터리즘 어느쪽으로도 접근이 힘든 단순한 서정적인 가사만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CCM 앨범들을 단순히 몇개의 싱글의 컷팅과 그것의 분석으로 메시지적인 측면을 가늠하기에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나 식스펜스의 이 앨범은 각 곡들이 상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Falling Leaves"의 리드미컬한 서정성은 "Meaningless"와 "Soul" , 그리고 역시 대미의 전주로 비트를 이어가는 "Apology" 까지 다양한 고백의 메시지들로 보완이 됩니다.


그리고는? 역시 "Trust"의 리프라이즈로 대미를 맺는거죠.




- 역시 첫 앨범다운 소박함이 있습니다. 마지막 10번 트랙을 차지한 "Trust"의 리프라이즈 버젼은, 이런 버젼들이 대개 보너스 트랙으로 10곡 이후에 포함되는 관례를 생각하면 이례적이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볼때 차라리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타에 키보드, 작곡.....슬로컴은 이 데뷔앨범에서 너무 바빴었는지 그의 장기인 현악기 커버를 많이 보이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이게 첫 앨범이니 아쉬웁고 할 것도 없었지요. 오히려 97년 앨범에서 보여졌던 클래시컬한 면모를 감쇄하고 락적인 부분이 살았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나름대로 식스펜스의 팬들에게 중요한 기점을 남기는 앨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다음 앨범인 [This Beautiful Mess]에서는 멤버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확실히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절충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을 또 좋아하는 것이지요. 비교적 과작들을 선보이면서 탄탄하게 다져간 이들의 행보를 보자면 97년 앨범의 뒤늦은 성공 또한 우연이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지속 되었으면 좋겠군요.


(19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