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ed by
Brown Bannister, Keith Thomas, Wayne Kirkpatrick
& Tom Hemby
(2003/Word/A&M)
찬송가 앨범, 크리스마스 앨범을 제외한 창작곡으로만 채워진 스튜디오 프로젝트만으로는 무려 6년만의 앨범입니다. 앨범발표가 게으르긴 했지만, 이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줄이야!
물론 크리스마스 앨범이나 찬송가 앨범 모두 정규 앨범 못지 않은 무게가 있긴했죠. 그래도 에미 그랜트니까요. 하지만 앨범에 대한 만족과는 별도로 새 앨범에 대한 기대는 팬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평행선을 그려왔습니다. 그 기대까지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자연히 비교되는 것은 바로전의 스튜디오 프로젝트인 [Behind the Eyes]입니다만, 어쿠스틱 내음이 짙었던 이 앨범보다 [Simple Things]는 나름대로 팝적인 성향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좀 더 깊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전의 힛트 앨범들인 [Heart in Motions]이나 [House of Love]같은 앨범들과의 연관성까지도 느껴져요.
물론 프로듀싱의 스타일은 복합적입니다. 80년대부터 그랜트의 음반을 도맡아 왔던 키스 토마스와 브라운 배니스터가 계속 참가하면서 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팝적인 스타일을 전담해왔던 마이클 오마티언이 빠지고 컨트리/포크 스타일을 장기로 하는 웨인 커크패트릭이 가세했죠.
사실 커크패트릭이나 배니스터가 맡은 곡은 한곡씩 뿐이니 이들의 경향이 크게 반영되었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스타일 절충은 이뤄집니다. 트랙이 많은 편도 아니니까 앨범안에서 스타일끼리의 응집력도 생기고요. 스케일은 앨범 제목처럼 단순하지만 오히려 만만치 않은 앨범이 생길만한 여지가 있는 셈이에요. 노래들만 좋다면요.
노래도 잘 만들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Behind the Eyes]보다 더 좋군요. 특히 "Happy", "Eye to Eye", "Simple Things" 까지 이어지는 미드 템포들의 흐름은 수려합니다. 출반과 함께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기도 하고요, 그 짙은 팝의 내음이 일단 상큼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에미 그랜트 답게 레코딩 단계의 지원군들도 화려하죠. 눈에 띄는 사람은 역시 남편인 빈스 길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부른 노래 "Beautiful"은 8년전에 함께 했던 듀엣곡인 "House of Love"만큼 임팩트가 있지는 않네요. 첫앨범 이후 크로스오버를 준비하고 있다는 틴에이지 싱어 케이티 허드슨이 "Eye to Eye"에서 게스트 보컬로 참가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만 하죠.
앨범의 후반부는 차분해지는 템포와 함께 어쿠스틱이 주가되는 스타일로 접어 듭니다. 전체적으로 90년대 초반의 스타일부터 90년대 중/후반의 스타일로 앨범 분위기가 전이 되는 셈이죠.
특히 어쿠스틱 파트의 절정을 맡고 있는 "Innocence Lost"와 "After the Fire"는 앨범의 좋은 에필로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에미 그랜트의 초기 음악이나 내시빌 지역에서의 라이브 등으로 익숙해진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노래들이 오히려 친근함으로 다가올 겁니다.
가사 이야기를 하자면... 삶의 일상성에 대한 고찰은 최근 에미 그랜트의 음반에서 늘 다뤄져왔던 부분이죠. 그 일상성에서 종종 주인공 역할을 했던 그랜트는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하늘하늘한 가벼운 테마부터 개인의 고백과 찬양까지 [Simple Things]는 정말로 에미 그랜트 자신의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다를 수 밖에 없죠. 예전 앨범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의 견고함안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투영시켰다면, 이 앨범의 수록된 "Out in the Open"같은 곡에서는 그 테두리를 빠져나온 자신의 모습에 필요한 치유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Out in the Open" 같은 노래는 일종의 결단력까지도 엿보게 합니다. 그랜트 자신도 이 노래를 수록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런지요. 하지만 가사 밑에 붙인 코멘터리에도 나왔듯이, 그랜트 자신도 이런 회고를 통해 일종의 치유의 경험을 원했을 겁니다.
[Simple Things]는 작은 앨범입니다. 단순히 앨범의 스케일만을 이야기한것은 아니에요. 출반전부터 실질적인 마케팅 단계까지 '크리스천 팝의 여왕'이라고 불리었던 때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좀 작아진 모습을 보이는 앨범입니다.
물론 최근 몇년동안 그랜트의 앨범이 그런 추세이긴 했습니다만, 특별히 이 앨범에서는 중년의 나이와 몇년동안 있었던 일신상의 일들때문에 밝은 모습을 보이기가 더 힘들었겠죠.
질타와 번민의 몇년이 지난뒤, 올해 도브상 공로상 수상을 수상한 이후 그녀가 돌아본 삶의 발자취는 벅참 만큼이나 회한도 함께 담겨져 있었을 테지요. [Simple Things]는 그 느낌을 투영한 앨범같아요.
보다 밝은 스타일과 분위기의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그랜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도 분명히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Simple Things]에 담긴 테마는 치열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진솔합니다. 그리고 이런 진솔함이 이 앨범의 진가를 만들었고요.
[Simple Things]는 크리스천 음악이나 에미 그랜트 자신의 앨범들 사이에서 음악적인 전환점을 만들만한 시도를 한 앨범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연륜이 말하는 고백의 테마에는 삶의 무게가 깊게 담겨있고, 이는 여느 가벼운 앨범들이 분명 따라올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앨범입니다. 무엇보다도 앨범이 담은 이미지의 감동을 제일 받은 사람은 에미 그랜트 자신이 아닐런지요.
(2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