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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음반 ALBUMS

에미 그랜트 Amy Grant [Legacy...Hymns & Faith] (200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9.
사용자 삽입 이미지


produced by
Vince Gill & Brown Bannister

(2002/Word)






에미 그랜트같은 대형 가수에겐 음반 출반의 텀이 길어진다는 자체가 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주는 결과가 됩니다. 이러다보니 그 기대치가 아티스트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과 유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팬들은 [Heart in Motion]같은 음반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랜트의 음악적 향방은 [Behind the Eyes] 즈음부터 그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녀의 새 앨범이 대충 이 스타일의 연장선이 되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만 했어요.


또 찬송가 음반이 갖는 전통적인 스타일에 대한 선입견이 더해지면서 더욱 의외의 반응들이 나온 것이죠. 물론 그랜트의 네임밸류때문인지 음반 발매전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돌았고, 때문에 정작 앨범이 출반된 시점에서 [Legacy... Hymns & Faith]는 그다지 낮선 앨범이 되진 않았습니다.


여기엔 앨범 자체가 갖는 의의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지극히 그랜트 자신의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사실 어느정도 공공연한 이야기가 되었죠.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공연한 이야기가 되어져야 하고요)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걷고, 한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과 회복의 시기를 거쳤다는 점 자체가 이 앨범에 담긴 숨은 의의를 말해주죠. 물론 그랜트 자신이 이 앨범의 부클릿에서 최근 몇년간의 일신상의 일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앨범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어느정도 알려진 이야기니 그 속뜻을 견지하는덴 별 무리가 없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한 회복을 시사하기 위해 에미 그랜트는 'Legacy'라는 타이틀로 그녀의 어린 시절을 투영합니다. 이 앨범 대부분의 선곡은 그랜트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찬송가들로 이뤄져 있다고 하죠. 그랜트의 음악을 계속 따라온 팬이라면 아마 그녀에게 도브상을 안겨준 89년의 "'Tis So Sweet to Trust in Jesus" 같은 곡을 떠올리기도 할만 할 겁니다. 앨범 전체가 이런 무드로 다져져있다면 충분히 기대할 만하죠. 진짜 이 앨범은 그 곡의 확장판 같습니다.



프로듀서를 맡은 이가 그랜트의 남편이자 컨트리 싱어인 빈스 길인 탓에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컨트리의 흐름으로 간다는 느낌이 짙은 앨범이죠. 공동 프로듀서인 브라운 배니스터를 잊어서도 안되겠고요. 길의 프로듀싱이 앨범의 음악적 방향을 정했주었다면, 배니스터는 기술적으로 깔끔하게 앨범을 담금질시킨 셈입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앨범의 분위기를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랜트의 보컬에서 이뤄집니다. 단순한 인스트루멘탈의 토대위에서 그랜트의 보컬은 원곡의 느낌에 대한 완전한 체득을 바탕으로 자잘하면서도 일관된 변주를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을 꼭 '컨트리 음악'에 대한 변주로 말할 필요까진 없을 겁니다. 차분한 어쿠스틱의 연주가 많기에 이런 느낌이 더 크긴할지 몰라도요.


그 결과, 총체적인 느낌은 가벼운 팝발라드의 스타일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를 통합하여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내쉬빌 버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요. "Softly and Tenderly"같은 곡은 이런 느낌이 꽤나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AC 음악이 가미된 음반의 성격을 부각시킨다면, 앨범 발매 첫주의 놀라운 판매량이 단순히 그랜트의 이름값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거에요. AC 음악 자체가 이미 미국 팝시장에서 기본기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음악이니까요.


이런 앨범의 하이브리드한 성격이 우리나라 팬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팝계의 AC 음악 자체가 그다지 재미를 못보니까요. 하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적어도 크리스천 음악의 필드는 그토록 시장의 흐름에 쏠리지는 않았지요. 어찌보면 이 앨범은 국내 크리스천 음악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더 선호도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Legacy...]의 일부분은 메들리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때문에 14곡이나 되는 트랙들이 있음에도 곡 하나하나는 웬지 소품같다는 느낌이 크게 듭니다. 재미난 점은 "It is Well with My Soul / The River's Gonna Keep on Rolling" 이나 "Imagine / Sing the Wondrous Love of Jesus" 처럼 전통찬송과 신곡이 결합하는 경우도 보여진다는 점이죠.


고색창연한 리듬과 참신한 멜로디 (게다가 "Imagine"은 아시다시피 머시미의 힛트곡 "I Can Only Imagine"의 리메이크입니다!)가 비슷한 흐름의 인스트루멘탈 위에서 만나는 것을 감상하는 재미는 정말 쏠쏠합니다.


또 각 곡의 소품같은 분위기와는 별도로 수록 트랙은 많아지는 느낌 때문인지 앨범의 스케일이 나름대로 커보이기도 합니다. 찬송가 앨범이라는 바탕에서 이런 오밀조밀한 구성을 기획해 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앨범이 갖는 컨셉은 여타의 모범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물론 실력있는 가수와 프로듀서들의 팀웍에 의한 결과겠지요.


각각의 노래들의 분위기는... 잘 맞아 떨어집니다. 곡의 감상이 갖고 있는 고저는 편곡에 힘입어 잘 증폭됩니다. 부산한 집회 분위기로 이끌어지는 "Marching to Zion"같은 곡들은 더욱 좋고요. 앨리슨 크라우스 같은 컨트리 스타가 콰이어에 가세했다는 점을 화제로 삼을만도 하지만, 지극히 편한한 홈커밍 분위기의 노래를 듣노라면 이런것도 무슨 큰 기획따위에 힘입은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편안하고 정겨워 보일 뿐이죠.


어찌보면 이게 앨범의 요지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Legacy...]는 찬송가의 뼈대를 완급한 시도로 치장하기 보다는, 보다 친근한 스타일로 다듬어 찬송가 고유의 편안한 느낌만을 살짝 부각시킨 앨범인 셈입니다. 화려한 광택보다는 은은한 윤기가 돋보인다고나 할까요.


물론 이것이 결코 앨범이 쉽게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Legacy...]의 앨범 전반에 흐르는 윤기는, 한번에 쉽게 바른 광택제의 화공적인 느낌의 불순함보다는 오랜 시간 매만져진 장인의 손때에 의한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몇개의 신곡을 기둥으로 해서 그 균형도 잘맞추고 있고요.



그리고... 다시 끄집어 내지만, 여기엔 가수 자신이 겪은 질곡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냥 편안하고 친숙한 찬송가 앨범이지만 에미 그랜트의 그 어느 앨범보다도 더욱 각고의 노력으로 나온 앨범일 것이란 생각도 드네요. 그녀의 다음 앨범이 어떤 배급망을 거치든, 어떤 스타일로의 전환을 시도하든, [Legacy... Hymns & Faith]는 그랜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그 중간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명반으로 기록될만 합니다.


(2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