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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비디오 VIDEOS

Sixpence none the Richer "Kiss Me" (199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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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 Steve Taylor (1997/Squint)


때는 1997년, 마이너 레이블인 R.E.X 에서 괜찮은 음반 석장을 발표했던 식스펜스 넌더리쳐는 재정문제로 사라진 R.E.X를 이어 자신들의 음반을 만들어줄 회사를 찾고 있었죠. 이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스티브 테일러와 그의 음반사였던 스퀸트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테일러는 이 출중한 밴드의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기로 한 뒤, 이들의 새 앨범 프로듀싱을 직접 맡았습니다. 당시 이 앨범의 첫 싱글은 "Kiss Me"라는 이상한 제목의 노래였어요.

"Kiss Me"는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테일러는 연이어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까지도 기획을 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는 PfR, 웨인왓슨, 아웃 오브 더 그레이, 그리고 자기자신의 뮤직비디오도 직접 감독한 경력이 있기에, "Kiss Me"의 뮤직 비디오도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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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범한 뮤직 비디오는 절대로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느낌이 다분한 이 노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테일러가 찾은 방법은 정말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선두주자였던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1961년작 '줄스 앤 짐 (Jules Et Jim)'의 장면들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뮤직비디오도 흑백이었지요.

사실 패러디라고 할 수도 없었죠. 이건 그야말로 그대로 '옮긴것'이었습니다. 당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여배우 잔느 모로와 오스카 베르너, 헨리 세레가 보여준 주옥같은 장면들은 SNTR의 멤버들이었던 리 내시, 데일 베이커 그리고 매트 슬로컴에 의해 그대로 재현 되었죠. 물론 97년 앨범 발표 당시 라인업이 이렇게 세 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테일러는 그야말로 '줄스 앤 짐'의 대표적인 장면들을 모두 뮤직비디오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세사람의 경주장면 (포스터로도 유명한 장면입니다. 아마 낯익으신 분들도 있을거에요), 여주인공이 남자 분장을 하는 장면, 자전거 하이킹, 모자 바꿔 쓰는 장면, 테라스에서의 아침 인사 장면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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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뮤직비디오는 장면 자체뿐만이 아니라 연출/표현 기법까지도 따라합니다.


시작부분의 촌스러운 자막부터 시작해서, 캐릭터의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된 얼굴을 정지화면으로 잡는 기법까지.. (별것 아닌것 같지만 61년 개봉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독특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대에 나오던 새로운 시도들과는 대조되는 색다름이 있었어요. 뮤직비디오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가 '줄스 앤 짐'이라는 영화자체가 갖고 있는 내용에 대한 헌정의 의미까지 갖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때깔이 고운 영화이긴 하지만 내용자체는 지극히 충격적이거든요.


1차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20여년간을 반복하는 사랑과 애증의 줄다리기, 그리고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여주인공의 자유분방함과 한 여자에 대한 공유와 우정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이 영화에선 거의 '아내를 넘긴다'는 식의 설정까지도 나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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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놉시스가 갖고 있는 무게까지 "Kiss Me"의 뮤직비디오에 딸려왔을리가 만무하죠.


게다가 고전 영화와는 달리 우리는 SNTR 멤버들에 대해,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친근감도 있기에 그런 무거운 주제를 대입하면 더욱 불편해 집니다. (세 명 다 따로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니!)



결국 테일러가 트뤼포의 영화에서 따온 것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이미지 조각들일 뿐입니다. 트뤼포가 이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괘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종합적 예술을 이루는 구성들중 하나인 시각적인 이미지를 차용하는 시도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훌륭하게 이뤄졌습니다.


프랑스와 과거라는 고풍스러운 시공간이 텍사스 출신 그룹의 새로운 노래와 만나서 이루는 상승작용은 정말 재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뮤직비디오는 성공작이었어요.


한참동안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할 뮤직비디오였지만, 2년뒤 엉뚱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죠. 빌보드 점령후 나온 MTV 버젼의 새 뮤직비디오 때문이었습니다.


MTV 버젼 뮤직비디오 이야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2002/10)


PS : 패러디라는 어감에 좀 진지함이 떨어진다면 트뤼포에 대한 오마쥬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뮤직비디오에도 그 증거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내시가 꽃을 떨어뜨리는 묘가 바로 프랑소와 트뤼포의 무덤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