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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S/기타 ETC

Bill Myers [Blood of Heaven] (199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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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Myers
[Blood of Heaven]

(1996/Zondervan)




고대의 유적지에 있던 촛농의 밀랍이 발견되고, 그 유적물에 묻어 있던 혈흔이 채취됩니다. DNA를 조사한 결과 그 피가 무려 2천여년전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전자 구성조사 과정에서 이 피의 주인이 오직 어머니의 유전자만 물려 받았다는 사실이었죠. 2천년전의 피이면서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피... 곧 이 피는 '예수의 피'라는 별명과 함께 조사대상이 됩니다.


제노다인이라는 연구소의 두 과학자 필립 오브라이언과 케네스 머코스키는 혈흔에 묻어있던 DNA를 바이러스화 시켜 동물들에게 주사해봅니다. 놀랍게도 이 혈청을 주사받은 호전적인 동물들- 심지어 제일 난폭한 비비원숭이까지도 지극히 온순한 성격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오브라이언과 머코스키는 사형을 6주 앞둔 연쇄살인범 마이클 콜먼을 설득하여 그의 몸에 이 혈청을 인체실험하기로 합니다. '절대의 DNA'를 주사받은 콜먼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실험동물들처럼 지극히 유순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확신을 갖게된 제노다인의 과학자들은 더욱 확실한 결과를 보기 위해 콜먼을 조건부 가석방시킵니다. 주기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약을 투여하기로 하고요.


콜먼은 얼굴과 이름을 바꾼뒤 캐서린 라이언이라는 미망인의 가게에 취직하게 됩니다. 남편을 잃은뒤 신앙마저 버린 캐서린은 순수한 콜먼의 모습에 점점 마음을 열게 되지요. 그러나 이 배후에는 캐서린과 콜먼이 모르는 더욱 큰 음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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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마이어스는 우리나라 기독교 서점에도 꽤 옛날부터 어린이용 비디오로 나와있는 '맥기와 나'(McGee and Me) 시리즈의 제작자입니다. 이 시리즈의 소설버젼은 물론 마이어스가 직접 집필했지요.


프랭크 E 페레티도 그렇고, 크리스천 소설작가들이 초창기를 어린이 소설로 시작하는 것은 무슨 통과제가 된 듯해요. 아무튼 어린이 소설작가였던 마이어스는 갑자기 방향전환을 한 이 공상소설인 [Blood of Heaven]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요.


그 당시 즈음 [The Oath]로 끊임없는 히트행진을 달리고 있던 페레티의 소설 타입에 비해 마이어스의 [Blood of Heaven]은 약간 방향을 달리했습니다. 책에 붙어있는 안젤라 E 헌트 (역시 크리스천 작가입니다.)의 서평처럼 '로빈 쿡의 냉기와 C.S 루이스의 풍유'를 담고있는 분위기의 소설이었죠.


무엇보다도 전문분야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이 소설을 믿음직스럽게 합니다. 물론 일반 소설계에서 로빈 쿡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이 이미 전문분야의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플롯을 닦아놓았기 때문에 시도 자체만으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없지요. 게다가 페레티도 92년에 이미 [The Prophet]('예언자'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나와 있습니다.)에서 방송/미디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전수해 준바가 있고요.


하지만 마이어스는 [Blood of Heaven]에서 꽤나 많은 영역을 터치하고 있습니다.


대충의 내용만 보더라도 파악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는 법조 분야와 유전자 분야에 대해 많은 전문지식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주인공인 캐서린 라이온이 전직핵커였다는 점을 들어 인터넷까지도 끌어들이고 있지만, 시절이 시절이여서 그런지 이 부분은 체감도가 떨어지네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전화선을 통해 모뎀접속을 초조히 기다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기시감도 꽤 됩니다. 인간의 폭력의식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터미널 맨]에서 이미 본적이 있죠. (그때는 DNA가 아니라 전기자극이었지만) 또 이를 통한 인간종자 대량생산은 마치 월남전 고엽제를 다뤘던 여러 미스테리물들과 비슷합니다. 고대 유적에서 채취한 피를 통해 DNA 조작하는 아이디어에서는 아무리 무심하려 한 척해도 [쥬라기 공원]이 떠오를 수 밖에 없고요.


생각나는 영화도 꽤 있군요. 콜먼의 사형장면에서 죄과와 죽음에 대한 공포의 상세한 묘사는 웬지 팀 로빈슨이 감독하고 수잔 서랜든이 주연 했던 [데드맨 워킹]을 떠올리게 합니다. 심지어 캐서린과 마이클이 제노다인 연구소의 파괴를 위해 연구소에 침투하여 경비원들과 싸우 는 장면은 [터미네이터 2]의 비슷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그 연구소의 이름은 '사이버다인'이었습니다!)


물론 후자의 예는 좀 억지인듯 하죠? 게다가 이 세상의 창작물들이 모든 선례들의 발전적인 인용이라는 경구를 생각하면, [Blood of Heaven]의 독창적인 부분은 꽤 흥미진진합니다.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요.


모든 크리스천 SF물이 갖고 있는 논쟁의 이슈는 역시 이 소설에서도 살얼음을 걷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의 피'라는 개념과 DNA를 통한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생겨나는 마이클 콜먼의 갱생 등이 그것이죠.


하지만 마이어스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그런것인거 같습니다.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마이어스는 위의 논쟁사항에 대한 인간의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답니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 소설이 다소 비극적인 결과로 끝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겠지요.


구원에 대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콜먼은 예수에 희생에 대한 감동으로 마음을 열게 되지만, 그 전 단계에서 그는 결국 DNA의 주입이라는 지극히 인위적인 '조작'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 인위적인 조작이 없었다면, 그의 구원은 요원해질 수도 있었다는 논쟁의 부분이 남게되지요. 신이 그를 구원하기전에 인간이 먼저 그를 구원했다 라는 패러독스가 생길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마이어스가 말하는 콜먼의 묘사는 이런 부분의 오해를 종식시키려 무던히 노력합니다. 주사를 맞은 콜먼은 기억상실증에 걸린뒤 새로운 삶을 사는 과거의 살인범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감정과 느낌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사형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샥 바뀌는' 황당함과는 다르게 콜먼은 차츰 차츰 '공포감'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통감하게 되면서 과거의 그의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심, 그리고 이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캐서린 라이언과의 만남을 통해, 콜먼의 갱생이 있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 조차 그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더 큰 전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제노다인이 발견한 혈액이 예수의 피인지 혹은, 그 어떤 사탄의 음모인지 하는 미스테리한 부분에 대한 무게도 실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결말까지 이 혈액에 대한 정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피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니까요.


중반부에서 콜먼의 갱생과정에서 생기는 과정들에 대한 묘사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전체의 플롯보다도 이 소설에서 더 훌륭한 부분같아요. 그는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에게 대한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통감 하기 직전에, 희생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먼저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타인들과의 소외감, 외로움을 알게 되지요.


캐서린과의 대화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난 죽는 사람을 여러번 봤어요.... 죽는 사람의 눈은 뭔가 말하려 하죠. 그들은 내가 왜 죽는걸까라고 말하지 않아요. 왜 지금까지 내가 살았을까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들은 '난 죄없어. 난 과거의 내 모습은 기억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무책임보다 훨씬 소설을 설득력있게 만듭니다.


'예수의 피'를 통해 벌어지는 음모들은 흥미진진합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이라는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소재가 정말로 독특 하다는 것 만큼은 인정해 줄 만해요. 특히 범인의 최후는... 잔인 하지만 꽤 통쾌했어요.


각 캐릭터는.... 콜먼은 참 맘에 드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갱생의 전제가 있다보니 혈청을 주입받기 전부터 이미 매력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오브라이언과 머코스키도 딱 각 역할에 맞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고요.


그러나 캐서린 라이언은 좀 별로입니다. 라이언은 이후에 나온 마이어스의 소설들인 [Threshold]와 [Fire of Heaven]에서도 계속 등장하는데, 아직 진정한 구원이 와닿지 않아서인지-물론 그녀의 과거와 연결되어 이야기 전체가 모두 다 그녀를 충격의 연속으로 몰아가는 행진이긴하지만-너무 히스테릭하게 나와요. 차라리 그녀의 아들 에릭의 모습이 훨씬 야무지게 나옵니다.


그러나 지극히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진행되어 가던 소설이 마지막 부분에서 신의 존재를 말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로 큰 은혜를 받았으니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도 하겠지요.


마이어스의 '심각한 소설' 시리즈는 이 책으로 훌륭한 출발을 했습니다. 프랭크 페레티의 과도한 환상적 분위기와는 달리 냉철한 시선의 분석도 잊지 않았고요. 어눌한 부분들이 많이 있고, 약간의 진부함도 느껴지지만 일단 확연한 테마를 잊지 않고 전개해나간 덕에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이후의 소설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아직 못읽었거든요. 하지만 이 정도의 탄탄한 구성력이라면 분명 전편보다 나은 범작들이 나왔겠지요.


(2002/03)


PS : 위에서 말한대로 마이어스는 그 뒤 연작시리즈인 [Threshold]와 [Fire of Heaven]을 발표했습니다. [Blood of Heaven]과는 독립적인 이야기들인것 같은데, 아마 이 책에서는 계시록, 초능력, 심령술들을 재료로 사용했던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