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 Basem Wasef (2001/Reunion)
라루의 음악이라면 분명 평이한 느낌의 뮤직 비디오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 겁니다. 일단 노래 전반에서 눈에 띄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풍기는 팀이니까요. 멤버들이 비디오형 가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래가 마치 자연을 아우르는듯한 그런 심상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시로 쓰여진 가사를 노래로 만드는 팀이니 말다한 셈이지요.
"Jaded"의 뮤직비디오는 그래도 비교적 평이합니다. 라루 남매가 허름한 강변의 간이 무대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두 남녀 모델이 노래 내내 갈등의 모습을 보이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지요.
하지만 늘씬하고 잘생긴, 게다가 짝달라붙는 매끈한 가죽패션까지 차려입은 두 남녀 모델이 세상고난은 다 맛본 것처럼 우거지상을 한채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모습은 분명 가사에서 말하는 'Faded'된 그리고 'Jaded'된 모습 -다시말해 지치고 낙망한 모습들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여기에 대책없이 황량한 브라운톤의 뿌연 배경도 한몫하고 있지요. 라루 남매의 노래하는 장면과 모델들이 나오는 신을 연결 시켜주는 고리가 바로 이 컬컬한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두 장면과 배경의 합치는 전혀 판이합니다.
다시 가사로 돌아가면 이 노래는 관계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물론 한쪽의 일방적인 고백이지요. 그 귀결점은 결국 이런 환난중에서도 예비하신 길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지만, 여기까지의 도달을 위해 이 노래의 화자는 자기자신,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한명에게 끊임없는 되뇌임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뮤직비디오의 두 남녀가 노래의 화자로 대입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여자모델이 중간에 이 노래를 입맞춰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가 정말로 노래를 부르는 화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 중 한명'이라는 전제만으로도 충분해요. 왜냐면 이 노래 자체가 어짜피 똑같은 상황에 있는 자아가 다른 자아에게 자신이 찾은것을 얘기해주는 내용이니까요.
"Jaded"의 비디오는 요즘 뮤직 비디오들이 잘취하는 의도적인 때깔을 의식적으로 배제했습니다.
하긴 노래의 내용자체가 우중충하니 뮤직 비디오도 이런 유지를 해야겠지요. 그러다보니 지독하게 복고적인 느낌까지도 따라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의도된 것으로 봐야겠지요. 감독인 바셈 와세트는 적어도 근자에 만난 어느 크리스천 뮤직 비디오에서도 이름을 드러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감독 고유의 심상인지 아니면 곡의 흐름에 맞춘 것인지 비교해볼 충분한 데이터도 없는 셈이에요.
하지만 후자의 경우였다면 와세트는 충분히 성공한 셈입니다. '진절머리가 나는, 대책없는'이란 의미를 제목으로 가진 노래이니 이런 분위기를 유지할만도 하지요.
노래의 마지막까지 이런 진행이 너무나 따라오는 바람에 클로징부분에서 라루 남매가 해맑게 웃는 장면도 이를 별로 상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건조한 뮤직비디오의 느낌이 가사의 이미지는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소의 연출이 더 가미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저간의 뮤직비디오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장르에서 지나친 연출의 개입이 완성도를 높이는 능사는 아니니까요.
일단의 감상만으로 결론을 풀어본다면 "Jaded"라는 곡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이 뮤직비디오가 주는 분위기 이상의 것을 생각하기는 힘들것 같네요. 아울러... 라루의 다른 노래들(밝은 곡들도 많이 있으니까요)의 뮤직 비디오도 와세트가 감독을 맡았다면 어떤 장면들이 나왔을까요?
(2002/07)
